서론
플루오린(불소)은 반응성이 가장 큰 원소 중 하나로, 충치 예방을 위해 치약, 양치액, 겔 등 구강위생 용품에 첨가되어 널리 사용된다[1]. 그러나, 과량 섭취 시, 위에서 플루오린화수소산(hydrofluoric acid)이 생성되어 급성 위장장애, 저칼슘혈증, 대사산증, 호흡산증, 신장장애, 사망 등 플루오린 독성이 나타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2]. 특히 6세 미만 어린이는 삼킴 운동반사가 미숙하여 플루오린을 삼킬 위험성이 높아, 플루오린 함유 치약 사용 시 보호자가 특히 주의해야 한다[3,4]. 본 저자는 평소 건강하던 유아가 플루오린 함유 치약을 과량 섭취한 후 상부위장관 출혈을 보인 증례를 경험하여, 이를 문헌고찰과 함께 보고하는 바이다. 본 연구는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임상연구심의위원회의 승인을 얻고 시행했다(IRB no. AJIRB-MED-EXP-20-352).
증례
평소 건강하던 3년 5개월 여아가 어린이용 플루오린 함유 치약 섭취 후 복통 및 토혈이 발생하여, 본원 응급실을 방문했다. 방문 5시간 전 환아의 어머니가 훈육을 위해 환아의 입안에 상기 치약 50 g을 짜 넣어 물고 있도록 했다. 환아가 무의식적으로 이를 삼킨 지 4시간 뒤부터 복통 및 토혈을 보였다. 초기 활력징후는 혈압 110/70 mmHg, 심장박동수 126회/분, 호흡수 28회/분, 체온 37.0℃였고, 급성 병색을 보였다. 장음은 정상이었고 복부는 팽만 없이 부드러웠으나, 전반에 가벼운 압통이 있었고 반동압통은 없었다. 구강 내 통증, 발적, 출혈은 없었다.
말초혈액 검사에서 백혈구 10,000/mm3, 혈색소 12.9 g/dL, 적혈구용적률 38.6% 혈소판 305,000/mm3이었다. 프로트롬빈시간은 13.0초, 활성화부분트롬보플라스틴시간은 37.0초였으며, 그 외 정맥혈 기체분석 및 혈청 전해질 농도, 생화학적 검사 결과는 정상 범위를 보였다. 섭취한 치약은 총 용량 100 g에 플루오린(유효성분: 플루오린화 나트륨) 500 ppm을 포함했고, 상기 섭취량을 고려하면 총 250 ppm의 플루오린을 섭취한 것으로 계산했다. 환아의 체중이 17.2 kg이므로 체중 당 섭취량은 1.47 mg F/kg body weight이다. 응급 위내시경에서 위몸통 하부 큰굽이에 위치한 화학물질 의존부위(dependent portion)로 추정되는 곳에 경계가 명확한 국소 발적 및 상피하 출혈을 관찰했다(Fig. 1).
입원 후, 식도 및 위점막에 감염 또는 자극을 유발하지 않기 위한 24시간 금식, 전해질 수액, 제산제, 양성자펌프억제제(proton pump inhibitor)의 지지요법을 시행했다. 제2병일에 구역, 구토, 복통이 완화되어 유동식 섭취를 시작했고, 이튿날 합병증 없이 퇴원했다. 퇴원 2주 후 외래에서 환아는 특별한 증상을 호소하지 않았다.
환아의 어머니는 치약을 물고 있게 시킨 동기가 훈육이라고 주장했지만, 의료진은 잘못된 훈육 방법으로 상해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아동학대로 당국에 신고했다. 사례 평가 결과, 상기 어머니는 극심한 양육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였고 이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가정환경 조사 후 도움을 제공하고 지속해서 관찰하기로 했다.
고찰
어린이 구강 건강에 필요한 플루오린 적정량은 0.05-0.07 mg F/kg body weight이며, 독성용량 및 치사용량은 각각 5 및 16 mg F/kg body weight로 알려졌다[5,6]. Whitford[6]에 따르면, 플루오린 독성은 플루오린 5 mg F/kg body weight 이상 섭취 시 흔히 발생했다. 유아의 플루오린 함유 치약 섭취의 안전성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섭취 후 위장관 장애에 대한 연구 및 증례는 불충분하다[4,7-9]. 본 증례는 유아가 치약에 함유된 플루오린을 독성용량 이하의 양으로 섭취했음에도 중독 증상이 발생한 한국 첫 보고이다.
본 증례에서 환아는 독성용량 이하의 플루오린을 섭취하였지만, 뚜렷한 급성 위장장애가 발생했다. 일부 문헌에서 0.1-0.3 mg F/kg body weight 정도의 소량을 섭취한 경우에도 구역, 구토, 복통 등이 유발될 수 있다고 하지만[10], 소량 섭취 후 발생한 위장관 출혈은 보고된 바 없다.
플루오린은 할로겐족 원소 중 가장 가볍고 반응성이 큰 물질로 치약에는 주로 플루오린화 나트륨, 소듐 모노플루오로포스페이트, 플루오린화 주석의 형태로 첨가된다. 이 중 가용성이 큰 플루오린화 나트륨은 과량 섭취 시 플루오린을 더 많이 배출하므로, 독성이 비교적 심하다[5,7]. 플루오린은 일반적으로 식수, 식품 또는 치약 등을 통해 노출되며, 본 증례와 같이 플루오린 함유 제품 과량 섭취 시 급성 중독이 유발될 수 있다. 2018년 American Association of Poison Control Centers의 통계에 따르면, 5세 이하 소아에서 플루오린 독성의 원인 중 플루오린 함유 치약 섭취가 72%였다[11]. 따라서, 유아가 플루오린 함유 치약을 삼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플루오린 독성은 위산과 반응하여 생성된 플루오린화 수소산에 의해 발생한다. 이 대사산물은 조직 투과력이 강하고, 조직 침투 후 수소 및 플루오린화 이온으로 해리된다. 해리 시 발생한 고농도 수소 이온으로 위점막이 부식되어, 구토, 복통, 토혈 등 급성 위장장애가 유발된다. 또한 해리된 플루오린화 이온은 세포 내 칼슘 및 마그네슘에 쉽게 결합하여 세포막의 소듐포타슘펌프에 영향을 주어 전해질 이상을 유발하고, 치명적 노출은 저칼슘혈증, 저마그네슘혈증, 고칼륨혈증을 초래하여 신부전, 심부전, 의식장애, 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12]. 따라서 플루오린 독성이 의심되면, 병력청취에서 플루오린 섭취량 및 종류에 대한 정보를 우선 얻어야 한다.
문헌에 따르면, 플루오린 섭취 후 치료를 위해서는 칼슘 함유 화합물 요법(예: 우유), 코위관 삽입, 수액요법이 필요하다. 칼슘 함유 화합물은 플루오린과 결합하여 위장관 흡수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으며, 코위관은 구토 시 플루오린으로 인한 식도 손상을 막기 위해 조심스럽게 삽입할 수 있다[13,14]. 또한, 수액요법은 체액을 알칼리화하여 소변을 통한 플루오린 배출을 촉진한다고 알려졌다. 상기 응급처치 이후에도 활력징후, 전해질 혈중농도를 통해 악화 여부를 관찰해야 한다[14].
본 증례에서는 섭취 후 5시간이 지나 방문하여 위를 통한 흡수 또는 배출이 완료된 것으로 판단했으며, 위세척 시 부식으로 인한 위 손상 및 출혈 가능성을 고려하여 코위관 삽입을 통한 위세척 및 칼슘 함유 화합물을 투여하지 않았다. 활력징후 및 혈액검사에 이상 소견이 없어 수액요법을 유지하고, 위내시경 검사에서 출혈 위염을 확인했으며, 플루오린으로 인한 위점막 손상을 줄이기 위해 지지요법 후 합병증 없이 퇴원했다.
본 증례의 환아는 치약에 함유된 플루오린을 독성용량 이하로 섭취했음에도 출혈 위염을 경험했다. 응급실에서 플루오린 함유 치약을 삼킨 환아가 관련 임상증상을 보이면, 소량 섭취라 해도 위내시경과 같은 적극적 검사로 진단 후 추가 손상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6세 미만 어린이가 상기 치약을 사용한다면, 보호자가 특히 주의하도록 가정 내 안전사고 교육을 강조해야 한다.